3250m로 올라가는 버스 본문
여행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말하라 하면 단연컨대
이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버스였다.
레는 해발고도 3250m에 위치한 고산지대로 10명 남짓한 사람을 실은 버스를 타고 그 험한 산길을
무려 20시간이나 달린다.
비행기로 가던지 차라리 가지 말라고 하던 유경험자의 허풍 섞인 과장에도
나는 꿋꿋히 20시간 버스를 택했다.
나도 그런 허풍 섞인 과장을 리얼하게 하고 싶어서 였는 지 모른다.
새벽에 출발한 버스에서 다행히도 나는 맨 앞자리를 탈 수 있었다.
탁 트인 시야에 한동안 경치를 감상하다
잠이 오기 시작했고 버스의 목받침대는 누가 뽑아 간건지 머플러를 목에 둘둘 감아 고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자다가 일어나보니
버스가 정말 한 대 지나갈만한 산길을 미친 듯 달리고 있었다.
산길 아래 론 낭떠러지였고 그 낭떠러지로 간혹 떨어진 버스가 보였다.
(허풍 섞인 과장이 아니다 ㅠㅠ 실제로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나는 너무 무서웠지만 쏟아지는 피곤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계속 졸았고
그렇게 자는건지 마는건지 비몽사몽하며 버스가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창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
왜 그러냐 하니 고산지대라 산소가 부족하다나? 이게 진짜 맞는 소린지..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을 몇 시간 동안 맞으니 진짜 뼈 속까지 서리가 맺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어떤 인도인이 잠에 들려고 하니 옆에 있던 애가 다짜고짜 싸대기를 때렸다.
졸면 죽는다나... 이게 진짜 맞는 소린지 ..
한 덴마크 코쟁이는 멀미해서 창문에다가 구토를 하는데 그 토사물이 맨 뒷자리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 사람들 얼굴에..
정말 아비규환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착하고 키 작고 어려보이는 동양인인 나에게
그 덩치는 나보다 2배만하지만 병약한 덴마크인에게 내 맨 앞 자릴 양보해줄 것을 권했고
난 등신마냥 자리를 내줬다. 그게 화근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뒷 좌석이 더 강했고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나도 버티다 못해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15시간이 지난 후부턴 아무도 얘기도 하지 않고
뷰고 나발이고 초점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시트만 바라보았다.
출발 전, 빠르면 19시간~20시간 걸린다는 운전수의 말에
20시간을 넘어간 후 부턴 시간이 점점 느리게 갔다.
낯설기만 했던 버스 밖 풍경이 이젠 다 익숙해진다.
운전수에게 얼마나 걸리는 지 물어봐도 소용없음을
뭐 이 버스를 탄 여행객은 다들 아는 눈치였다. 여긴 인도였다.
간혹 보이는 간판의 Leh에 희망을 품고 버리기를 반복하고
기절하고 싶을 때 쯤 레에 도착했다.
나는 이 악몽같은 버스로 인해
이틀동안 꼼짝없이 호텔에 누워 열병에 고산병을 앓았고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한 입술포진으로
지금까지 입술 끝에 흉터가 남게 되었다.
하.... 고작 이 장황한 여행기를 남기고자 미련하게 그 버스를 탄 걸까
7년전 혈기왕성한줄 알았던 나에게 질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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