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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말하라 하면 단연컨대 이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버스였다. 레는 해발고도 3250m에 위치한 고산지대로 10명 남짓한 사람을 실은 버스를 타고 그 험한 산길을 무려 20시간이나 달린다. 비행기로 가던지 차라리 가지 말라고 하던 유경험자의 허풍 섞인 과장에도 나는 꿋꿋히 20시간 버스를 택했다. 나도 그런 허풍 섞인 과장을 리얼하게 하고 싶어서 였는 지 모른다. 새벽에 출발한 버스에서 다행히도 나는 맨 앞자리를 탈 수 있었다. 탁 트인 시야에 한동안 경치를 감상하다 잠이 오기 시작했고 버스의 목받침대는 누가 뽑아 간건지 머플러를 목에 둘둘 감아 고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자다가 일어나보니 버스가 정말 한 대 지나갈만한 산길을 미친 듯 달리고 있었다. 산길 아래 론 낭떠러..
한국의 스위스 단양, 일본의 스위스 유후다케같이 이 큰 땅덩어리 인도에도 스위스라고 불리는 마날리가 있다. 푸른 녹원과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1급수, 맑은 공기까지 정말 그럴 듯 하다. 이 모든 것을 폭넓게 즐기고 싶어 패러글라이딩을 신청했다. 막상 산 꼭대기에 올라가니, 뭔가 허술한 장비의 인도인들이 우릴 태우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타고 싶어 팁으로 무려 3000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준비했고 내 파트너 인도인이 장비를 착용시켜줄 때 내밀며 팁이니 잘해달라 했다. 인도인은 깔깔 웃으면서 그 돈을 받더니 자기 주머니에서 그 돈의 2배되는 돈을 집더니 내 주머니에 꽂아주면서 말했다. " It's for you. Have a good time" 나는 비행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세번 째 델리에 오니 더 이상 삐끼들이 달라붙지 않았다. 델리를 거쳐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맥간에서 3일간 머물기로 하였다. 맥간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첫날엔 물안개가 끼었고 나머지 이틀은 비가 내렸다. 게하의 창문으로 물안개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둘째날 우연히 달라이라마의 연설회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연설회가 시작하자 수많은 티벳인들이 큰 절을 올리기 시작했고 몇몇 외국인들만이 멀뚱멀뚱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달라이라마를 보면 우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냥 동네 아저씨 같이 편했다. 연설하면서도 여유있게 미소짓는 모습은 마냥 행복해보였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연설을 한참을 듣다가 멍하니 게하로 돌아왔다. 돌아와 게하에 있던 사람들과 빗소리를 들으며 밤늦게 술을 진탕 마셨다. 잔뜩..
땅 덩어리 넓은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버스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구간이 있다. 그럴 때 기차를 이용하게 된다. 인도에는 다양한 기차 등급이 있는데 가축도 타고 짐 넣는 선반까지 사람이 들어가 있는 2S 등급이 있고 ( 나는 차마 미안해서 가방을 올리지 못하고 안고 탔다. ) 에어컨이 쉴새 없이 나와 춥다고 하는 2A등급 인도 부자들이 탄다는 고속열차 마하라자 특급열차까지 우리 여행객들에겐 뭐니뭐니해도 누워갈 수 있는 슬리퍼 SL칸이 최고다. 얇은 판때기에 누워 가다보면 조악한 철창과 유리창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쉴새없이 들어온다. 나는 인도가 이렇게 추운지 몰랐다. 방콕 ddm 사장님이 혀를 차면서 주신 여름침낭이 아니었으면 정말 얼어 죽었을 거다. 가끔 기차가 스면 짜이왈라들이 짜이를 파는데 위생상 ..
인도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인도엔 명상을 통한 자아성찰, 깨달음의 길이 있다고 한다. 터번을 둘러쓴 구루가 요가를 하며 옴을 외치고 존재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로 윤회로 이어지는 삶의 굴레를 벗어나는 해탈을 논할 것만 같았다. 류시화 시인의 책에서 처럼 말이다. 그런데 전혀 보지 못했다. 카스트 제도가 없어졌다곤 하지만 길거리에 천민들은 이유없이 두둘겨 맞고 있고 봉사활동을 간 곳에선 에이즈 발병률이 높고 병식이 아예 없으며 위생상태가 낮아 치약을 주니 먹는 아이들이 있었고 기차역에선 종교 갈등으로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성폭행과 강도로부터 여자들은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철학과 종교가 뭐가 중요하지? 그래 뭐 꼴랑 몇 달 배낭여행 갔다오고선 내가 뭘 알겠냐. 그래도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
나는 타투를 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는 없다. 몸에 낙서질이라니 유치하긴 하다. 그런데 하고 싶은 걸. 그래도 나는 직업적 이유로 절대 보이는 곳에 해선 안 된다. 그런데 카오산로드 길거리에서 한 레게머리 아저씨가 타투와 헤나를 하는 것을 봤다. 입간판에 있는 팜플렛에는 온갖 잡스러운 사진들이 붙여져 있었다. 한참을 시선을 빼앗겨 보고 있으니 "그거 보름이면 완전 지워져 해보고 싶으면 해봐" 옆에 있던 형이 헤나 처음 봤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진짜요? 저 할래요" 가격 흥정이고 뭐고 그냥 오른 팔을 걷어 아저씨한테 대뜸 내밀었다. 옆에 있던 형이 비싸다고 그냥 손등에 작게 하라며 말렸다. 그렇게 탄생한 첫 헤나. 조악하고 삐뚤삐뚤하지만 난 그래도 맘에 들었었다. 하지만 태국에서 인도로 넘어오며 열흘..